<Rolling pieces>
참여작가: 홍은희 Nina Hong
전시기간: 2020.12.9 - 17
글: 전영진
사진: 안부
붙은, 또 떨어진 사물, 몸, 우리, 세계
전영진
구(sphere)는 평평한 면이 한 군데도 없다는 점에서 평면성과 위배되는 도형이며 동시에 어떠한 시점에서 보아도 원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평면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입체) 혹은 원(구)으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빛이라는 외부요소가 필요한데, 빛이 부재한 공간에서 원이 되고, 빛을 존재하는 공간에서 구가되기 때문이다. 또한 약간의 외부의 힘으로도 운동성을 가지는 구는 고정된 사물임에 동시에 움직이는 사물이며, 이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힘이라는 외부요소가 필요하다. 실제 외부요소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정의에 필요한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무엇을 어떻게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느냐에 항상 꼬리표처럼 달린 질문이며, 그렇게 정의된 모든 것은 정확한 무엇이 아닌 각주에 불과하다. 또한 사전에 등재된 단어들이 사전 속 언어에 의해 정의되는 것처럼 한정적이다. 고정하고, 움직이게 하고, 빛의 변화로 달리 보이게 하고, 여러 곡선으로 잘리고 덧붙여져 변주된 매끈한 표면의 구는, 하나의 것으로 고정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며 동시에 보이는 표면과 그 속에 가득 찬 속성에 관한 작가의 실험이다.
이러한 정의definition의 운동성은, 미의 기준이 변화하는 것, 예술의 정의가 변화하는 것, 매체에 대한 고정된 해석이 변화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의미 변화는 다분히 현시점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여러 방법에 의해 재현되는 주제지만, 고정되지 않는 이미지 자체를 중심에 두고 하나의 단어로 고정되지 않도록 풀어내는 방법론은 홍은희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작가는 이전 전시에서 외부세계가 작가 자신을 규정하는 언어를 설치 형태로 풀어내는 작업을 보였다. 완성된 형태는 타인의 자신을 향한 언어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타의 적이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작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구현했다는 점에서 자의적이다. 작품은 때때로 작가의 정신과 신체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와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정의의 어긋남을 통해 정의라는 것의 허점과 표면과 속성의 같지 않음을 작품을 통해 표현했다. 곧, 어떻게 보이는지의 문제는 다분히 주체의 의지 안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며, 이는 이번 전시에도 이어지는 주요한 중심 서사이다. 그러나 이전에는 작품을 통해 사회적 관점에서의 몸을 길게 풀어서 표현했다면, 이번 전시는 조금 더 내면으로 들어와 관념적이고 생물학적 관점을 포괄하는 상징화된, 함축적인 몸을 말한다.
신체적 한계라는 말은 각 주체의 운동력의 최대치로 정의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이유로 제한되는 한계와 시선의 영향력에 의한 한계가 더 크다. 이로써 넓은 스펙트럼에 분포한 신체는 쉽게 좁은 스펙트럼으로 모여버리고, 단위로, 구간으로, 쉽게 인지하게 한다. 이렇게 좁혀진 간격은 미의 기준 역시 좁아지게 하기 마련이며, 이로 인해 몸의 대상화는 쉽게 야기된다. 예를 들어 흰색에서 검은색까지 존재하는 피부색에서 한국인이 욕망하는 피부색의 범위는 아주 좁다. 보정으로 얻으려는 결과물의 범위는 실제 피부색의 범위의 1/10도 되지 않을지 모른다. ‘분홍색’과 ‘벗은 몸’이라는 평범한 소재로 이것이 어떠한 단어(feminism)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가능성에 대한 염려 역시 신체를 구속하는 한계의 한 형태가 된다. 작은 부분을 잃게 됨으로써 잃게 되는 구의 운동성은 타인의 시각에 의해 규정되어버리고 마는 주체의 자의적 운동의 정지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이번 전시는 어떤 것으로 정의되는 것 자체에 대한 은유이며 실험이다. 인지되지만 정확한 정체성을 알 수 없는 것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몸과 예술과 미와 매체 등이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정의 역시 몸과 매체로 기민하게 연결되어 움직인다. 움직이는 몸을 통해 움직이는 몸과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보고, 빛과 움직이는 시점에 의해 정의될 평면과 입체라는 매체를 사유하고, 비추는 빛에 의해 표면이 달라지는 것은, 곧 몸이 세상에 의해 규정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몸과 세상이 연결되는 지점(외부세계)에 대한 장이다. 구를 움직이게 하는 몸과 구에 의해 움직이는 몸 사이에 맞닿은, 항상 붙어 있지만 고정되지 않는 마찰 면은 세상과 만나고 밀어내는 찰나의 순간에 있음을 말한다. 이는 설명적이지만 설명이 없는 지점으로의 여행이며,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투명하게 인지하게 하려는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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