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공간: PHANTOM PLACE>
참여작가: 정지원 Jiwon Jung
전시기간: 2020.8.1-13
글: 전영진
기획: 안부(박종일), 전영진, 김성근
디자인: 마카다미아오
전시사진: 이의록
주관: 별관, 레인보우큐브
주최: 마포구 예술활동 거점지역 활성화사업 추진위원회
후원: 서울시, 마포구, (재)마포문화재단
Screening _ 투영하고 걸러내고 가리 우는 것
전영진(작가) junyoungjin.com
스크린에 가려 실루엣silhouette만 슬쩍 보이는 이미지는 원본을 대변하는 흔한 복제물 로 볼 수 있지만, 실루엣 자체를 의미를 지닌 하나의 형태로 볼 수도 있다. 복제품으로 일컬 어졌던 이미지가 수많은 재생산 단계를 거쳐 원본성을 모두 잃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자체를 독립적인 또 하나의 원본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는 이미지가 의미변화의 오랜 역사를 거친 후 최근에 이르러 논의되고 있는 지점이며 이를 통해 비로소 빈곤한 이미지1 는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를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는가에 대한 재현의 미학적 관점은 표면 을 넘어 세계로부터 획득한 감각들을 구체화하는 것에 있다. 이 전통은 예술이 이데아의 모방 (감성계sinnenwelt)을 또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미메시스mimēsis로부터 시작된 길 고도 험난한 과정이며 동시에 예술의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정지원 작가의 작업은 세상 의 표상으로 존재하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주변으로부터 획득한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상영 showing하는 동시에 원본과 복제품, 실제reality와 그림자 혹은 실재real 와 가상의 관계를 풀어 내고, 그것의 원본성과 재생산된 것의 독립성, 주체성에 관해 이야기 한다.
하나의 공간에서 하나의 매체로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다루어 전시하는 것은 동시대 작가에게는 매우 흔한 방식이다. 그러나 회화에서 영상, 설치에 이르는, 작가가 다루는 다양한 매체는 표현법의 다양성 문제가 아니라 매체 자체로부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게 볼 수 있다. 가령 그가 회화의 표면에 입힌 이미지는 어떠한 사물을 재현한 것이라기 보다는 사물과 떼어낼 수 없지만 숨겨진 존재 – 그림자 – 자체의 회화와의 연결지점에 관한 것으로 읽을 수 있으며, 설치된 인조 식물은 실제 식물의 대체품 이라기보다는 복제품이라 불 리는 또 다른 속성의 소재를 설치방식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의미를 지니며, 상영되는 이미지 조차 자연을 옮겨 놓은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을 각자의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인류의 습관 중 하나로 비디오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일렬의 행동/작업 방식은 재현한다 는 예술의 오랜 행위 너머 원본 – 재현된 것 – 소비되는 것 – 재생산된 것 – 새로운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순환 자체를 매체라는 것에 투영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번 전시 역시 일견 평범한 삶이 만들어내는 평범하지 않은 재현에 있다고 느껴진 다.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를 취향과 유행과 한정된 공간에 맞추어 옮겨 놓은 실내 정원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를 가상의 공간으로 옮기 는 중 자연스레 일어나는 복제, 거름filtering, 자기화의 과정에서 투영하고, 걸러내고, 가린다는 의미를 지닌 스크리닝screening되고, 이를 통해 각각의 소재와 이미지가 독립된 존재로 자리매 김하게 되는 과정과 그것이 다양한 매체로 전환되는 과정에 일어나는 원본성의 전복, 독립된 소재로의 재탄생을 가시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안정감을 주고 편안한 누군가의 개인적인 장소가 대부분의 타인에게도 그러한 장소라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실루엣이나 그림자처럼 가려진screening 이미지는 개인화된 것으로 서 원본과는 다르다. 이 전시를 통해 관객이 보아야 할 의도 역시 원본(처음의 이미지)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감각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할 이미지들이다. 인조 식물은 외형이 똑같이 생겼다 는 점에서 실제 식물의 복제품이라 여겨지지만, 물과 빛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형태와 이미지가 본질을 규정할 수 없고, 이는 재현방 식에 따라 같아 보이는 표면의 이미지들이 실제로는 다른 속성을 지닌 것, 개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과 같다. 덧붙여 같은 언어로 표현되는 경험이 실제 같은 것인지, 내가 보 는 것은 타인이 보는 것과 같은 것인지, 실재와의 간극을 포착하는 것은 어떻게 표현될 것이 며 가상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빛이 만들어 낸 환영을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것으로 재현하는 행위는 하나의 가치로 여기지만, 그림자만 보게 되는 동굴에서는 그림자와 실제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림자 역시 형태를 가진다는 점에서, 빛이라는 명백한 존재로만 구현된다 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은 실재와 가상의 차이가 무의미한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는 모든 것이 어떤 가치와 의미로 쓰이게 되는지 질문한다. 즐거운 마음 곁에 부담을 얹어 고민이 묻은 채로 전하게 되는 초대. 특히나 ‘지금 시국에 죄 송한 마음을 담아’리는 전제가 하나 더 붙어 서로가 서로이기 쉽지 않은 요즘, 환영하고, 환영 받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그래서 요즘의 우리는 환영illusion에 갇힌 채 서로를 환영 welcome 한다. 환영welcome과 환영illusion이라는 동의어 틈에 정지원 작가의 작품이 있다. 익 숙한 이미지 속에서 발견하게 될 이질감은 결국 여러 매체를 통해 재탄생된 모든 작업처럼 감 각에 닿아 곧 익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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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 -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김실비(역), 서울: 워크룸프레스, 2018.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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